
개 꼬리
이사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리 집 해피 녀석, 해피해서 죽을 것 같다고
죽여 달라고 꼬리를 흔든다
아니, 휘두른다
길을 막아서는 녀석을 발로 물리고
방으로 들어가자
그 녀석 상주처럼 문짝을 긁어대며 박박 운다
그래, 당신을 생각하면
나도 개 꼬리처럼 나를 흔들던 때가 있었지
연탄집게가 부러진 아궁이 앞에서
바람이 벌려 놓은 지붕 밑에서
시간도, 거리도
당신에겐 참 어둡던 때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꼬리를 흔들다
결국 꼬리가 몸통을 흔들던
바짝 당신에게 납작했던 시간들
축대를 짚고 가는 바람의 기척에
나의 귀가를 그렸을 당신도
한때는 분간도 없이 흔들던 개 꼬리였을까
밤새 밖에 두어 영영 잃어버린,
이제는 더는 흔들 수 없는 그 개 꼬리
그래서 꼬리뼈라도 더듬어 보는 밤
참 미안하다
그때 좀 더 아프도록 흔들지 못한 것이
ㅡ『지구에서의 마지막 여행』(여우난골, 2023)

<해설>
개들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눈물겨울 정도다. 전폭적인 신뢰, 전심전력하는 헌신. 이제는 애완견의 시대가 아니라 반려견의 시대다. 웬수 같은 가족보다 정이 더 간다. 이사람 시인의 이 시는 그런데 견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흡사 개처럼, 아내 앞에서 내가 꼬리를 흔들던 과거의 어느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했던 신혼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절에 아내한테 따뜻하게 못 해준 것이 미안하다. 돈을 많이 못 벌어와도 견공이 주인을 대하듯이 전폭적인 신뢰, 전심전력하는 헌신을 보여주었더라면 덜 미안할 텐데 말이다. 개는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든다. 주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표시하는 것이다.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로 하는 것이다. 너와 함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입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꽤 오래 전에 어느 기관에서 한국의 노인층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질문 중 하나가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후회되는 일은?’이었다. 1위가 놀랍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죽 살았다는 것이었다. 젊었을 때야 몇 번 했겠지만 늙어가면서 무뚝무뚝한 남편은(또 아내가) 배우자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고 산다. 부끄러워하지 말자. 볼 때마다 꼬리를 흔드는 견공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