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57) 그대가 자유를 느낄 때―김기덕의 「자유인」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57) 그대가 자유를 느낄 때―김기덕의 「자유인」
  • 이승하
  • 승인 2023.09.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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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자유인 

김기덕


성미 한번 고약다
이 나이에 어디 내놓을 데 없는 학점이
무엇이 그리 대수라고

방통대 재학 내내
짓누르던 학점 스트레스는
오늘 ‘영국 소설’ 시험을 마지막으로
외우면 금방 잊어버리는 
영어 단어 부담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유인이 되었다

어스름 저녁 무렵
아파트 정원 그늘집 의자에 앉아 
빗소리 듣고 있노라니
자유의 기운이 가슴으로 타고 오른다
아, 홀가분한 이 자유

그럼
이제부터 무슨 일 하지……

ㅡ『공간시낭독회』 제517회(2023년 8월)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만학의 시인이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문학과 마지막 시험을 쳤나 보다. 재학 내내 학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마지막 시험을 잘 쳤는지(F를 면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설사 높은 학점을 받았을지라도 “이 나이에 어디 내놓을 데 없는 학점”인데 그놈의 학점에 연연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시험을 앞두면 가슴이 두근대고, 학점이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진다.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자유의 기운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고 한다. 아마도 방통대 다니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기분일 것이다. 학생 수가 꽤 많은 것으로 아는데, 배움이라는 것은 한평생 해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자기 전공에서 높은 학업을 쌓은 이가 도전의식을 새롭게 갖고서 방통대 학생이 되어 공부하는 이도 많다고 한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객관식으로 출제하는 시험도 있으리라. 연세 높은 분들이 시험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귀엽다고 할까(오오 용서하시라), 엄지척을 보여드리고 싶다.

 이 시의 화자는 수년 동안의 시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찾아온 자유를 지금 만끽하고 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을 할까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시를 읽는 나도 마음이 설렌다. 졸업식장에 서 있게 될 방통대 예비졸업생 모든 분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다. 고생 많았습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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