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록도 7
최하림
크고 작은 보퉁이를 이고 철선(鐵船)을 내린 아낙들이 울퉁불퉁한 길을 돌아가노라면 오래된 교회가 나오고 길게 휘어진 해안길이 시작된다 아낙들은 종종걸음으로 간다 때마침 계절풍이 불어와 청솔가지들은 흔들리고 받다가 차오르고 새들이 후드득후드득 날아간다 벽안의 천사들이 병원 문을 닫고 들어간다 계절풍은 그 뒤로도 세차게 계속 불어와 소나무는 소나무들끼리 판잣집은 판잣집끼리 문둥이는 문둥이들끼리 서로 부여안고 밤을 보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소록도는 비극적인 징조를 점점 선명하게 보이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진다 검은 바다가 소록도를 집어삼킨다
ㅡ『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랜덤하우스중앙, 2005)

<해설>
최하림(1939〜2010) 시인이 「소록도」 연작시 7편을 쓴 바 있다. 앞의 6편은 시집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에 실려 있다. 최하림 시인이 태어난 곳은 신안군 안좌면 원산리 팔금도이다. 안좌면은 기좌도ㆍ안창도ㆍ팔금도라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동쪽의 안창도와 서쪽의 기좌도는 1917년 이후 두 섬 사이 갯벌을 매립, 안좌도가 되었다. 최하림이 이 섬 중에서 팔금도에서 태어났고 1945년 해방 직후에 안좌국민학교에 입학, 배로 통학하였다. 1950년에 섬을 떠나 목포에서 살았고, 1965년에 상경하였다. 목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포함해 15년 가까이 살았으므로 이 지역 또한 대단히 중요한 성장 배경이 된다. 시인이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랐고 10대와 20대 중반까지 15년을 항구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바다’ 이미지와 ‘섬’ 이미지에 입각해 시를 쓰곤 했다.
16일에 신안군 팔금도에서 ‘최하림 피오르 문학제’가 있었다. 박선우 문협 신안지부장이 초청해 팔금도에 가서 주민들에게 최하림 시인의 시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이런 경우 군수(박우량), 군의회의장(김혁성), 군청직원들은 시낭독회와 초청가수들의 노래가 끝나면 일을 핑계삼아 사라지는데 특강을 끝까지 들어 진땀을 뻘뻘 흘렸다. 야외였고,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천막 안에서 내가 읽은 최하림의 시에 대해 얘기했다.
최하림 자신이 태어나 자란 팔금도는 슬픔의 섬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병으로 돌아가셨고, 이웃집 아저씨들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큰 태풍이 와서 섬 주민들이 죽기도 했다. 친구가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기도 했다. 그런데 팔금도보다 훨씬 슬픈 섬이 소록도였다. 뭍에서 한센병에 걸린 환자들을 집단으로 수용한 섬 소록도. 환자들은 아팠고, 외로웠고, 뭍의 부모형제와 일가친척이 그리웠다. 바다와 섬, 그곳의 비극을 잔잔히 그린 최하림의 시는 슬프다.
이 시 속의 ‘벽안의 천사들’은 소록도에서 40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를 가리킨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사람은 한센인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다 건강이 나빠지자 은퇴를 결심한다. 소록도 주민들이 성대한 환송식을 준비하려 하자 이들을 번거롭게 하기 싫다며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소록도를 떠났는데 훗날 다시 소록도를 방문, 주민들과 눈물로 인사를 나눈다. 7편의 연작시를 읽으면 최하림 시인이 ‘섬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이들 시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시전집 책날개의 약력에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는데 고치면 좋겠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