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러져 있다
정우석
오토바이 한 대
뻘쭘히 서 있다
뒷자리에 상자 켜켜이 달고
골목 이곳저곳 누비며
새벽별 무던히도 구경했으리
몇 분 안에 배달하시오
거역할 수 없는 지령이
그를 조이듯 거리로 내몰고
오토바이는 평소와 같이
주어진 할당량 채우려
공격을 감행했을 거다
주인은 어디 갔는지
어김없이 서 있는 오토바이
사람들 장애물 피하듯
몇 마디 욕설로 지나쳐 가고
며칠간 보이지 않아도
누구도 관심 주지 않을
사람 한 대
ㅡ『하루를 삼키다』(시와정신사, 2023)

<해설>
택배회사에서 짐을 분류하는 일을 한 이의 수필집을 읽은 적이 있었다. 과로사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그만두고 목숨을 건지는 과정이 눈물겨웠다. 짐을 지역별로 분류하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짐을 오토바이에 싣고 여러 군데 배달하는 택배기사나 퀵서비스 기사는 얼마나 힘들까. 특히 태풍이 불거나 불볕더위가 내리쬐는 한여름, 폭설이 퍼붓는 한겨울에는.
언젠가 버스 타고 귀가하는 길에 오토바이와 함께 대로상에 쓰러져 있는 중국집 배달 청년을 본 적이 있었다. 다친 것 같았는데 사고 현장을 내가 탄 버스는 금방 떠나서 그 청년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추돌사고를 당했는지 커브를 틀다 스스로 넘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의 주인공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고, 오토바이만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집 대문 밖에 택배 물건이 있으면 올 게 왔다고 생각할 따름이지만 그 물건을 차나 오토바이에 싣고 와준 사람이 있다. 오토바이가 엉뚱한 장소에 있다는 것은 주인의 부재, 즉 죽음이나 와병을 뜻한다. 택배 일을 하는 이들 가운데 과로사하는 이들이 실제로 많은 것으로 안다. 사인을 받아가기 위해 대문 앞에 서 있는 분에게 잠깐 계시라고 하고는 냉장고에 둔 생수 한 병을 드렸더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것이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