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2018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 “상상력의 닫힘과 열림, 한국형 판타지를 말하다.”가 지난 6일 오전 1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콘퍼런스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항중앙연구원 7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는 ‘전통문화를 활용한 콘텐츠 창작 경향’을 파악하고, 역사기관 연구자와 전문 창작자가 만나 문화와 기록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행사는 2012년부터 시작됐으며, 올해는 선조들의 상상력이 담긴 기록물을 토대로 한 한국형 판타지 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개회식과 세션1 ‘한국형 판타지를 말하다’, 세션2 ‘선인의 상상세계, 판타지로 그리다’, 폐회식 순으로 진행됐다. 콘퍼런스가 진행되는 한편 로비에서는 7개 주관처의 산업과 콘퍼런스 참여자들의 작품에 대한 부스들이 운영됐다.

오후 1시 개막식에서 김상준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영화계에서는 ‘신과 함께’와 ‘물괴’, ‘창궐’ 등 한국적 감성을 담은 판타지 영화가 큰 호응을 얻었다.”며 “오늘 이 자리가 발표하고 토론하는 단순 담론의 자리를 넘어, 한국 판타지를 다양하게 토론하고 실질적으로 연대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두 개 세션은 김홍익 안전가옥 대표의 사회 하에 진행됐다. 첫 번째 세션에서 진산(우지연) 작가는 ‘한국형 판타지를 말하다’를 주제로 한국형 판타지의 특징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곽재식 작가는 ‘한국 괴물 이야기의 종류와 특징’을 주제로 우리 설화나 민담 속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이야기에 대해 짚었다.

진산 작가는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등의 작품을 써 현대 판타지의 시조로 불리는 톨킨은 “판타지는 현실의 왜곡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며, “이 발언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라는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반지의 제왕 이야기는 소박한 농민이 거대한 어려움에 맞서 그것을 견뎌나가는 과정의 은유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이처럼 판타지는 새롭게 만들어낸 세상이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왕정국가나 엘프, 드래곤 등이 등장하는 정형화된 판타지도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띤다. 예컨대 폴란드 작가 안드레 샙코브스키의 소설과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게임 “위쳐”는 얼핏 보면 판타지의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유럽이면서 패권국가가 아니었던 폴란드의 특징에 맞게 “왕들의 권력이 보잘 것 없고 민초를 지키는 역할을 ‘위쳐’라는 사냥꾼들이 하게 됐다.”는 것. 진산 작가는 판타지란 “특정 문화와 결합하는 것”이라 명명하며,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들을 ‘한국적이다’라 생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왜곡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곽재식 작가는 한국의 괴물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할 때, “무엇은 진짜 한국의 전통이고 무엇은 가짜”라는 식의 접근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도깨비’가 있다. 곽 작가는 최근 “뿔이 나고 팬티를 입은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고, 한국의 도깨비는 뿔이 없고 장난을 좋아하며 악함이 별로 없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으나, 사료를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고 전했다. 영조실록에는 도깨비를 섬기는 ‘독갑방’이라는 무당이 누군가를 저주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다른 자료에는 뿔 있는 도깨비 그림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곽재식 작가는 “한국 괴물은 그 수와 특징이 굉장히 다양하고,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게끔 그려지는 경우도 많았다.”며 오히려 “현대 대중문화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좁아진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전했다.

진산, 곽재식 작가의 발표 뒤에는 양창진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동북아역사재단 소속 윤유숙의 토론이 이어졌다. 양창진 연구원은 “결국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은 한국 사람이 쓰면 필연적으로 ‘한국형’이 된다.”고 진산 작가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한 작가의 글에는 그 사람이 평소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가 필연적으로 배어있다는 것. 그러며 “판타지는 결국 누가 썼느냐가 중요하고, 경험과 합쳐져 믹스 콘텐츠가 나온다.”고 시야를 넓히자 제안했다.

두 번째 세션의 주제는 “선인의 상상세계, 판타지로 그리다”로 국내의 민담이나 설화에 모티브를 둔 웹툰 작가들을 만나보는 시간이었다. 돌배(장혜원) 작가는 “‘선녀와 나무꾼’의 변주, 21세기 선녀”를 주제로 자신의 웹툰 “계룡선녀전”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과거와 현재의 정반합을 꾀한 작품이라 밝혔다. 김나임 작가는 “‘바리공주’가 전하는 위로와 희망”를 주제로 “처녀귀신인 손말명, 총각귀신인 몽달귀신, 광대가 죽어서 된 귀신 청계, 잉어 도령, 업신 등 우리나라의 전통 귀신들의 모습과 그들이 품고 있는 아픔을 보여주고 싶어” 웹툰 ‘바리공주’의 연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두 작가의 발표에 대한 토론은 한국국학진흥원 박지애와 한국고전번역원 정영미가 맡았다.
한편 홍보부스에는 전통문화 창작 소재 보유 공공기관의 콘텐츠를 창작자와 참가자들에게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역사분야 관련 7개 기관은 고전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도서와 글을 읽어주는 어플리케이션, 역사 자료 보존 현황 등 기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을 선보였다. 또한 안전가옥과 온우주출판사, 위즈덤하우스는 발표자 창작물 전시 부스를 마련하여 콘퍼런스에 출연한 창작자들이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전시하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는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궂어진 날씨에도 현장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끝을 맺었다. 콘퍼런스의 관계자는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발표를 통해 보았듯 한국형 판타지는 무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역사 분야 7개 기관과 창작자들의 만남이 한국형 판타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