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이퍼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현대의 미술 작품들은 난해하다.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보다 보면 ‘왜 이 작품이 비싸고 유명하다는 거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미술 작품 수집가들, 아트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이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기 위해 두산아트스쿨의 강연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을 듣고 왔다. 이 강연은 홍콩 크리스티의 스페셜리스트 정윤아 강사가 진행한다. 한 강의에 한 작가씩, 총 4번에 걸쳐 제프 쿤스, 프란시스 베이컨, 조지아 오키프,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을 다룬다. 강연의 주제가 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었다.

거대한 풍선 강아지. 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제프 쿤스의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첫번째 강연은 상업 예술가로도 유명한 제프 쿤스의 작품들에 대해 진행되었다.
강사님에 따르면 제프 쿤스는 정말 ‘미국’적인 작가이다. 그는 과거에 자신의 작품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상품 거래인으로 일을 했던 만큼 과거 또한 미국적이다. 미국의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유럽 미술과 같은 고전 전통 미술의 부재와 대량생산체계를 미술에 적용해 미술 작품을 공장에서 생산해내던 앤디 워홀이 떠오른다. 제프 쿤스의 작품들은 그 뒤를 이은 것으로, 쿤스는 조수들과 테크니션들을 고용하여 일종의 공장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내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영남의 화투 그림 대작 사건도 있었던 만큼 조수의 기용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제프 쿤스나 앤디 워홀의 경우는 대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쿤스의 작품은 아이디어와 발상이 작품 정체성을 결정짓는 개념미술이지, 붓의 사용 방식이나 기술적 부분이 작품의 핵심 본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고용된 최고의 테크니션들은 기술적 질을 끌어올려 오히려 작품의 아이디어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쿤스는 개념을 제시하고, 그 개념을 쿤스의 생각대로 표현해줄 수 있는 기술자를 고용하며, 굳이 스스로 모든 기술을 연마할 필요는 없다.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모든 부서의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제프 쿤스는 오로지 증류수와 소금, 농구공만으로 만들어진 The Equilibrium 작품을 위해 물리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농구공을 어항 안에 둥둥 띄워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투명한 고정액을 붓는 쉬운 방법도 있는데(이 경우에는 다만 ‘둥둥 뜬 것처럼’ 보이겠지만), 쿤스는 농구공과 액체인 물의 균형을 보이기 위해서는 ‘물’이라는 재료가 작품에 중요하다 여겨 물을 사용하기를 고집한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쿤스의 작품들은 단지 기발한 발상으로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쿤스의 아이디어 실행력도 높이 평가받는 것이다. 쿤스는 이 작품을 통해 소수의 흑인들이 농구 선수로서 각광받는데 대부분의 흑인은 그런 기회조차 없다는 현실을 비꼬며 나이키의 흑인 농구선수 광고를 그대로 액자에 넣어 쓰기도 하는 등 사회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 비판적 메시지나 쿤스의 아이디어 실행 능력 등을 모른 상태로 작품을 보더라도 이 얼마나 신기한가!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물 위에 균형 잡고 떠 있는, 혹은 물 속에 잠겨서 움직이지 않는 농구공을 한 번쯤은 보고 싶을 것이다. 하다못해 작품 앞에서 셀카 한 장 찍더라도 재미있지 않은가. 사실 제프 쿤스의 작품에 그다지 크게 관심이 없던 필자 본인도 신기한 작품을 접하자 제프 쿤스 전이 열린다면 꼭 가보고 싶어졌다.

Equilibrium을 접하고 나니 쿤스가 더 신기하고 재밌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호기심이 더해졌다. 우리에게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몰랐지만 그의 작품들은 모두 놀라웠다. 이번에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벌룬 독을 주목해보자. 그 전에 ‘uncanny’라는 개념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Uncanny는 ‘불편한, 기묘한’이라는 뜻인데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특정한 것이라 인지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인지한 것과 실제가 다를 때 느끼는 불편함이다. AI나 로봇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예전보다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가령, 매우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로봇을 보고 인간인 줄 알고 다가갔는데, 가까이 가보니 인간이 아니었을 때, 우리는 uncanniness,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사진으로는 잘 드러나지 못하지만 실제로 벌룬 독이나 벌룬 멍키 등 벌룬 시리즈를 보면 정말 풍선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 구조물이 풍선이 아니라 알루미늄이라는 것이 너무 놀라워 사람들은 uncanniness를 느끼고 의외성을 느낀다. 물론 재료의 의외성에서 느끼는 uncanniness는 불편함보다는 기묘함과 긍정적인 경이로움일 것이다. 많은 미술 작품들은 직접 봐야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말들이 많은데, 직접 그 작품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재료의 의외성 뿐 아니라 원래는 작은 물건이었던 풍선 강아지를 거대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오는 충격도 있다. 작품 사진들과 실물은 확실히 압도감의 차이를 준다. 게다가 실제 풍선처럼, 거울처럼 반짝거리도록 알루미늄을 연마하는 기술은 독자적 기술이라 다른 사람들은 아예 따라할 수 없는 기술이라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것이 정교하게 실행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제프 쿤스인 것이다. 사실 이 작품들도 The Equilibrium과 같이 심오한 뜻을 모르더라도 그 자체로 신기하고 재미가 있다. 제프 쿤스는 예술을, 많이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제프 쿤스는 조각상(Statuary)와 진부함(Banality)를 통해서도 대중들이 쉽고 재미있게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조각상(Statuary)에서는 미국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난감들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거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고급스럽게 만든 작품들은 어른들과 어린이 모두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추억을 생각하며, 그리고 어린이들은 장난감 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가령 합체 로봇 장난감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미술관에 있으면 모든 관객들이 사진 한 장 찍어보려고 그 작품은 인기가 폭발할 것이다. 진부함(Banality)에서도 비슷하게 싸구려 장식품을 거대한 크기로 고급스럽게 만듦으로써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저급하다고 취급되는 것을 고급으로 만들어 저급과 고급의 경계를 없앤다. 현대 미술 이전의 예술이 가졌던 왠지 모를 멋짐, 소수의 사람만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어려움, 미술을 깊게 알지 못하는 이들은 범접하기 힘들었던 아우라를 지워버리는 데에 제프 쿤스의 작품이 기여했다. 그의 예술은 고상한 미술관이라는 한정적인 장소에서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설명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의 거대한 작품들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길을 지나는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한 경우도 많았다. 쿤스는 예술을 누구나 즐기는 것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사랑받았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쿤스는 상업적인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작품의 한정판 에디션을 만들어 팔기도 했으며, 다양한 가격의 소형 작품들을 인터넷을 통해 살 수도 있다. 포탈 사이트에 벌룬 독을 쳐보면 8만원으로 쿤스의 정품 벌룬 독을 구매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작은 상품이 그 정도 가격이지만 미술 작품의 가격이라고 생각한다면 생각만큼 비싸지는 않지 않은가? 쿤스의 팬이라면 인생에 하나쯤은 소장할 수 있을 만한 가격이다. 또, 그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똥과의 컬라보래이션을 통해 루이비똥 가방을 디자인하기도 했으며, 직접 그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상업 활동을 했다는 측면에서도 제프 쿤스는 미국의 대표적 작가 앤디 워홀의 뒤를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프 쿤스는 나르시시즘이 강한 작가인데, 그래서인지 스스로를 홍보하는 광고를 예술 잡지에 싣기도 했다. 제프 쿤스는 여러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작가였다. 포르노 배우 출신 국회의원 치치올리나와 사귀면서 자신과 연인의 친밀한 관계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조각 작품들과 사진 작품들을 만들었다. 또,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보고 조각 작품을 만들어 법정 공방까지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기를 거듭하며 아직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실제 강연을 들으면 위트 넘치는 정윤아 강사님께 쿤스의 훨씬 더 많은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강사님의 강연은 듣다 보면 관객으로써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 강연은 무료이며, 2008년부터 지금까지 평론가나 아티스트를 초청하여 강연을 진행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현대미술 강의이며, 매년 약 1,500명 이상이 수강한다. 아쉽게도 이번 강연은 마감되었다고 하니 두산아트스쿨의 다음 강연은 꼭 노려보자. 아쉬움이 남는다면 유튜브를 통해 지난 강좌를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두산아트센터 유튜브 : www.youtube.com/doosanartcenter)


남유연 칼럼니스트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Pratt Institute Fine art - Painting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