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 / 손창섭이 쓴 시조 '희작戱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 / 손창섭이 쓴 시조 '희작戱作'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4.2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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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 / 손창섭이 쓴 시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 / 손창섭이 쓴 시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 / 손창섭이 쓴 시조

 

희작戱作 

 

주장은 오줌이요 무언은 똥이랄까 

어차피 꺼질 인생 할 말은 하고 살세 

정신적 배설물이란 생의 표시이리니.  

 

  ―『작가세계』(2015년 겨울호)

 

  <해설>

서울대 방민호 교수가 일본에 전후 문단의 기린아였던 소설가 손창섭(1922〜2010)을 만나러 갔다가 일본인 부인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은 놀랍게도 시조집이었다. 그의 시조는 일종의 일기였다. 일기의 내용은 신세한탄이며 자조였다. 손창섭은 1973년에 도일했고 1995년 8월에 위의 시조를 썼고 1998년에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로 창씨했다.

서양속담에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en.”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라고 순서를 바꿔 번역해 쓰고 있다. 단 일회적인 인생,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손창섭은 이 시조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자고 다짐하고 있다. 인생이 살아보니 참 보잘것없지만 “정신적 배설물”인 소설을 한국에 있을 때는 열심히 썼었다. 그것만이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표시’였다. 그런데 ‘할말’, 즉 일본에 간 이후에는 글로써 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시조를 혼자 쓰면서 자조한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입을 봉한 채(글을 쓰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으니 “생의 표시”인 문학행위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손창섭은 일인칭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신의 희작: 자화상」이란 그의 단편소설과 관련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화자를 실제 손창섭 모자로 보는 독자들이 많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화자가 어릴 때 외간 남자와 동침을 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에 방해가 되자 화자를 학대한다. 그때 화자에게 형성된 이상성격은 여자를 멸시하거나 학대하는 것으로 고착되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외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성폭력의 결과로 같이 살게 된 일본인 여성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화자는 자살이나 감옥행을 면하게 된다. 손창섭 본인은 일본에서의 학교생활, 평양 귀향 이후의 사회생활이 엉망이 되고 마는데, 이런 내용으로 미루어 이 소설을 자전으로 보는 연구자들이 많다. 그러나 세간의 판단과 달리 손창섭의 부인인 우에노 치즈코의 증언으로 이 소설이 허구임이 밝혀졌다. 손창섭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 후 청상과부로 생을 마쳤고, 손창섭은 고학을 하며 학교에 다닌 근검절약형에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모범생 타입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정철훈이 쓴 『내가 만난 손창섭』에 나온다. 즉, 「신의 희작」과 「낙서족」 등은 자전소설이지 자전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아내 우에노 여사는 미용기술을 이용해 집안을 꾸려간다. 손창섭이 도일 후 생계는 극빈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조금과 아내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해결한다. 글을 쓰지 않게 된 손창섭은 수입이 거의 없었다. 정철훈의 책에도 손창섭이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을 계속했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손창섭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이나 작가로서의 활동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심하게 자책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손창섭의 성찰을 범부(凡夫)의 고민을 넘는 작가의 것으로 읽어야 한다. 소설쓰기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상력의 폐허의식, 일본인 처에 얹혀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 소설을 쓴들 발표지면 확보가 가능할까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쓴 시조다. 손창섭이 쓴 일련의 시조가 어서 출간되기를 바란다고 얼마 전에 방민호 교수에게 부탁하였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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