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터벌(이하 네마프) 둘째 날인 지난 17일 (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아이공과 중앙대·한국외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이 공동기획으로 ‘젠더(X=접경)국가 심포지움’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반기현 중앙대 HK+ 접경인문학 연구단 연구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정찬철 한국외국어대 교수, 전우형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교수, 정희원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가 패널로 참가하였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개막작 모나 하툼 감독의 ‘거리측정’과,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캘린더’라는 영화를 다루며 이번 네마프의 주제인 ‘젠더X국가’에 맞춰 국가 간의 접경에 속한 디아스포라와 디아스포라를 바라보는 젠더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희원 교수는 개막작 ‘거리측정’에 대해 설명했다. 감독인 모나 하툼의 부모님은 이스라엘에서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1948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건국하면서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레바논 베이루트로 망명했다고 한다.
1948년도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있었으며, 이는 팔레스타인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미국과 영국이 국제연합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아랍인과 유대인 거주 구역으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였으나 아랍은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모나 하툼은 베이루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고국인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20대에 영국 유학을 가게 되는데, 그 사이 레바논에 내전이 발생해서 공항이 폐쇄되어 부모님께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영국에서 살면서 만든 영화가 ‘거리측정’이라는 작품이다.

거리측정은 처음에 화면 가득 아랍어 글씨와 모나 하툼의 어머니의 나체가 중첩되어 있다. 모나 하툼이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영어로 관객에게 들려주는 영화다. 영화를 통해 어머니와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이야기가 표현된다.
모국어 글씨를 통해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어머니의 사진을 통해 여성의 몸을 복합적으로 담아내며 한 국가에 속한 여성의 상실감을 그려낸 작품이다.

전우형 교수는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캘린더’에 대해 설명했다. ‘캘린더’라는 영화에서 사진작가로 분한 아톰 에고이안 감독은 배우자와 함께 달력에 사용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아르메니아에 있는 교회로 간다. 그곳에서 택시 운전사는 그들을 안내하며 아르메니아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아르메니아계인 아내는 이를 통역한다. 아톰 에고이안은 배우자와 운전사 사이의 긴밀한 유대감에 질투를 느낀다.
전우형 교수는 ‘캘린더’가 외로움, 고독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주인공은 외로움과 고독의 증상으로 불안하고 세상을 적대적으로 보면서 불온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영화에 나타나는 고독, 외로움, 불안, 불온한 상상과 시선은 감독인 아톰 에고이안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에고이안은 아르메니안 혈통을 갖고 있고 이집트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감독의 정체성을 차치하고서도 디아스포라가 갖는 불안과 외로움이 있는 것이다.
전 교수는 “디아스포라가 주변의 시선들 때문에 차이를 보이지 않기 위해 순치되지만 무의식에 찌꺼기가 남아서 역으로 불온하게 표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우형 교수는 이 영화에서 아톰 에고이안 감독은 자신의 것이었던 디아스포라를 부인에게 넘겨주면서 디아스포라가 가진 불안, 외로움, 불온 위에 젠더를 더 했다고 봤다. 아톰 에고이안을 불편하게 만든 시선, 국가의 것이든 주류의 것이든, 법이든, 가치든 간에 그 속에서 택시 기사와 부인을 불온하게 바라보는 것은 이들을 구속하고 불편해하는 주위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거다.

이어서 정찬철 교수는 종합적으로 ‘거리측정’과 ‘캘린더’를 비교하며, 이 영화들의 젠더와 국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정 교수는 ‘캘린더’에서 감독은 사진기 뷰파인더, 비디오 카메라로 세상을 보며 모국의 역사와 지형은 대상화한다고 했다. 사진기는 고국을 대상화시키는 장치인 것이다.
정 교수는 이어서 ‘캘린더’라는 영화속에서 나오는 매체인 비디오와 카메라는 거리 두기고, 아톰 에고이안은 모국을 떠나려는 이산자로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그의 부인은 뷰파인더를 기준으로 그와 반대편에서 번역자 위치에 서서 영상으로 보여진다. 그녀는 모국과 소통을 원하는 이산자인 것이다.

구체적 매체와 미디어는 다르지만, 편지라는 매체와 글자라는 미디어로 이야기를 하는 ‘거리측정’은 ‘캘린더’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정찬철 교수는 두 영화의 방향성은 정반대라고 이야기했다. ‘캘린더’는 뿌리를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고 ‘거리측정은 뿌리를 복구하는 이야기 같다고 했다. 한 영화에서 미디어는 고국을 떠나기 위한 도구이고, 다른 영화에서는 고국을 소통하기 위한 매체로 본 것이다.
또한, 정찬철 교수는 여성들이 나오는 이산자들의 영화는 보통 국가를 그리워하는데 남자들이 나오는 영화는 국가보다는 가족을 이루려는 서사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남성 이산자와 여성 이산자는 다른 메타포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그 뿌리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패널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한 관객은 ’접경‘이라고 하면 물리적 국경이 먼저 생각나는데, 국가 내에서의 관습적인 차이, 관념 법, 종교에도 접경이 있는 것 같다며 접경의 정의에 대해서 물었다.
이에 대해 전우형 교수는 접경은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라며, 민족, 문화의 차이도 있지만, 국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차이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화해와 공존을 향한 발판이 있으려면 그 차이로 부터 벗어나는 법이나 제도를 발명하는 공간으로서의 접경도 필요하다며, 갈등을 불편하게 여기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접경의 역할이자 재정의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다뤘던 모나 하툼의 ’거리측정‘은 개막식에 이어 8월 20일 오후 12시경에 상영되며, 아톰 에고이안의 ’캘린더‘ 8월 16일 상영에 이어, 8월 18일 오후 6시에 또 한번 상영한다.
자세한 일정은 네마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