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문학계, 연극계 등 문화예술계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부산작가회의가 10월 17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부산작가회의는 대형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의 부산지회이며, 약 250여 명의 문인들이 회원으로 재적 중이다.
이하는 부산작가회의 성명서 전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망령들, 표현의 자유를 허(許)하라
다시, 구시대의 작태인 ‘검열’의 유령이 배회한다. 국가권력은 자신의 안정적인 지배를 위해 검열이라는 기제를 작동시켜 숨통을 확보하려 든다. 이것은 국가권력이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방증이요, 스스로 위악적인 인공물임을 실토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검열은 사상과 표현을 억압하여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받아들이게끔 강제하는 수단이었다. 예술인들은 그 표현의 억압에 저항하며 예술의 자유로운 깃발을 세우려 분투했었다.
권력이 있는 곳, 그 곳에 항상 저항이 있어 왔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함께 어울려 사는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독점적인 권력에 맞서는 민중의 힘이라 믿는다. 그런데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현 정부는 가소롭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정부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망각시키려는 후안무치한 기획으로 검열을 소환해 냈다.
그것이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블랙리스트, 9,473명의 문화예술계의 명단이다. 국가권력이 블랙리스트를 만든 의도는 자명하다. 국가권력에 의해 복종되지 못하는 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한 점이다. 특히 저 블랙리스트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조작에 저항하고 주변부 인물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닌, 그 갸륵한 양심을 지키려는 작가들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혀 권력의 입맛에 맞는 문학인들을 재생산하고자 하는 혐의가 있다. 작가는 혹은 작가정신은 검열의 칼날에 펜의 힘으로 예리하게 저항해 왔다. 어쩌면 블랙리스트에 보이는 저 이름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호이자, 환기되는 목소리, 국가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는 살아있는 실존을 증명한다.
근본적으로 문학예술은 사회를 생기 있게 만드는 하나의 정서이자 공기다. 이것은 위악적인 보편을 질서화하려는 어떤 권력에 맞서 그 보편을 목적론적으로 정지, 지연시키는 역할을 해 온 것이 바로 작가들의 임무이다. 따라서 문학예술은 표현의 자유 토대위에 서 있는 청신한 바람이요, 그 시대의 살아있는 힘이다. 문학예술의 토대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자유에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에 종속된 사람들을 내면화하려는 국가, 자신의 입맛대로 민중을 질서화하려는 이 위악적인 정부를 우리는 2016년에 다시 확인하고야 말았다. 검열을 두려워하고 꿈조차 검열에 구조화되기를 바라는 정부의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짓은 당연히 실패하고야 말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에서 검열의 대표적인 법적 기제는 국가보안법과 형법이었다. 국가 권력은 자신이 만든 법적 기제를 위해 그 법을 보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국가의 법 정립을 위해서 폭력을 행사해 왔다. 이 과정은 국가권력의 지배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의 역설적 표시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학예술은 이에 맞서는 고귀한 행위이다. 그런데 문학을 하는 사람들, 그것을 옹호하는 길이 자유의 길임을 믿었던 사람들을 다시 국가는 배제하려한다. 그들의 자유의사를 불순한 감각으로 엮어내고 국가권력에 대항만 하면 그것이 마치 매국행위인 것처럼 호도한다. 지배구조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작태를 비판하고 꼬집는 자들을 바로 그 지점에서 전도시키려 한다.
식민지 시기의 치욕적인 유산인 검열이라는 기제가 아직 이 시대에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한다. 아니 잔존이 아니라 위악적인 국가권력의 마지막 발악에 우리는 분노한다. 작가의 삶과 연결되는 창작 행위, 그 표현의 자유를 왜곡, 위축시키려는 국가는 후진사회이자, 후진 국가이다. 블랙리스트의 주인공은 그 명단의 사람들이 아니다. 정작 국민의 정서를 위반하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명기되어야 자는 바로 현 정부이다.
이에 부산작가회의는 블랙리스트라는 낡아빠진 방식에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옹위하는 길이며, 초과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질문.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계기이다. 우리의 분노는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망각하려는 국가권력, 그 무치의 감각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 현 정권에 대한 유감이자 적극적인 항변이다.
-부산작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