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2) / 악성 댓글아 제발! - 서숙희의 ‘어떤 죽음’
어떤 죽음
서숙희
그는 죽었다
무슨 징후나 예고도 없이
제 죽음을 제 몸에 선명히 기록해 두고
정확히 세 시 삼십 분 이십이 초에 죽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죽음은 타살에 가깝다
오늘을 어제로만, 현재를 과거로만
미래를 만들 수 없는,
그 삶은 가혹했다
날마다 같은 간격과 분량으로 살아온
심장이 없어 울 수도 없는 그의 이름은
벽시계,
뾰족한 바늘뿐인
금속성의 시시포스
ㅡ『문학과사람』 (2019, 여름호)

<해설>
서숙희 시조시인의 이 작품이 어떤 계기로 탄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읽자마마 최근에 자살한 연예인 설리를 생각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자료를 종합해 보니 악성댓글로 많이 괴로워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채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과도한 비난을 받았다는 기사도 보인다. 연예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존재여서 사생활이 노출되기도 하지만 대중은 그들의 인격을 존경해주는 차원 높은 응원을 해주었으면 한다. 실수를 하거나 실언을 하면, 혹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에 못 담을 말로 맹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성댓글로 고통을 받는 연예인들의 인격을 왜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설리의 자살 이유 증 하나가 악성댓글이었다면 그것은 시인의 말마따나 타살에 가깝다.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문인의 생가나 기념관에 갈 때가 있다. 그곳에는 벽시계가 멈춰 있기도 한데 바로 작가가 숨을 거둔 그 시간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한 위대한 작가가 숨을 거둔 시간을 기억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시곗바늘은 금속일 따름이지만 우리가 그 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소우주가 멈추었기 때문이다. 타인을 존중해 주기는커녕 심한 욕을 마구 하면서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