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4) /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 - 이경의 ‘그들이 온다’
그들이 온다
이경
그들이 온다
원군인지 적군인지 모르는
강철 팔과 무쇠 다리와 번개 두뇌를 가진
그들이 온다
우리의 약점과 폐단을 보완한 실용적 인간
그들이 인간의 지혜를 추월한 날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우리는 더 완벽한 더 많은 그들을 만들고
판매하고 보수하는 일에 종사할 것이다
우리는 땀 흘리거나 고민하거나
근육과 두뇌 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것은 퇴화할 것이다
어렵거나 중요한 결정은 그들이 할 것이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기르는 힘들 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수는 늘어나고 기능은 진화할 것이다
아, 우리는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들이 다 살아줄 것이다
이미 쏘아버린 화살처럼 우리는
이 괴기스러운 행진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말해야 하지 않을까
멈춰!
-여여 동인 제1집 『빠져 본 적이 있다』 (현대시학사, 2019)

<해설>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미래사회를 상상해서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를 보면 무시무시하다. 건물마다 경비들이 사라지고 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면 무시무시하다. 로봇이 수술하고 인공지능이 처방하고 있다. 시인이 ‘그들’이라고 지칭한 이들이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사이보그일지도 모르겠다. “아, 우리는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는 말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의 삶을 대신해주고 있는 기계인간들. 스타워즈의 시대에는 드론이 인간을 대신해 전쟁을 할 거라고 한다. 공중전을 펼치고 추락하고 박살나고. 인간은 그저 버튼이나 누르고 있을까?
이제는 강아지 로봇이 신문을 물고 오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가사도우미와 비서의 역할을 ‘알아서’ 행하고, ‘충실히’ 수행한다. 우울증이 좀 있는 주인을 위해 애교도 부릴 줄 안다. 시인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박수를 보내는 대신 “멈춰!”라고 소리친다. 이들이 날로 발전하면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갖고 있고 인격이 갖춘 인간은 어디 숨어 있고 기계나 자동시스템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이 시대에 시인마저 박수를 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019년인 지금, 인공지능이 멋진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붓으로 그린 그림이 경매시장에서 꽤 고가로 팔린 일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쓴 웹소설이 제법 재미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시를 쓰겠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적인 것이 사라진 세상을 우리는 꿈꾸었던 것인가!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