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2) / 영영 이별의 순간 - 문영의 ‘잠깐 갔다 온다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2) / 영영 이별의 순간 - 문영의 ‘잠깐 갔다 온다던’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2.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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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2) / 영영 이별의 순간 - 문영의 ‘잠깐 갔다 온다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2) / 영영 이별의 순간 - 문영의 ‘잠깐 갔다 온다던’

  잠깐 갔다 온다던
   
  문영


  우연과 필연은 생의 합병증, 시장에 내다파는 글보다야 죽은 나무에 물 주는 수도사 이야기*가 절망의 희망이 아니라면, 이런 유투브를 보는 게 어때

  오십 년 넘게 함께 살던 쓸개와 간 떼어내고 병실 침대에 누워 이별의 아픔 가로수를 보며 달랠 때 수술실 입구에서 남편에게 잠깐 갔다 올게, 라고 하던 여자의 말 몸에 넣고 캄캄한 우주를 헤매다 돌아온 내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들을 때 진통제를 뚫고 솟아나는 신음보다 무서운 잠시 갔다 올게! 링거 줄 주렁주렁 몸에 달고 흘러가고 오는 강물을 뼈저리게 바라볼 때 바보, 못 온다고 미리 말했으면 컴컴한 시간은 잘라내고 재생 편집을 해둘 걸, 바보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어, 한 다리를 허공에 두고 전봇대에 오줌 눈 개가 몸을 바르르 떠는 사이 환생이 쩌릿쩌릿한 아, 잠깐 갔다 온다던

  * 타르코프스키 영화 <희생>

  ―『바다, 모른다고 한다』(도서출판 서정시학, 202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2) / 영영 이별의 순간 - 문영의 ‘잠깐 갔다 온다던’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시에 유투브가 왜 나오나 했다. 가운데 연은 유투브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는데 “재생 편집을 해둘 걸”이라는 구절이 나오므로 시적 화자의 독백으로 보면 되겠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한 말이 “잠깐 갔다 올게”와 “잠시 갔다 올게”였다. 쓸개와 간을 떼어냈다고 하므로 암이 여러 곳으로 전이되었나 보다. 아니면 합병증으로 위험한 지경에 이른 것일까. 또 한 차례의 수술이 행해졌지만 아내는 그만 저승으로 난 강을 넘어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못 올 거라고 했어야 참말이므로 잠깐 갔다 올 거라고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내를 잃는 이 시의 화자는 아, 당신 나한테 잠깐 갔다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뇌고 있다. 바보! 바보! 남편은 자책하며 이렇게 부르짖는다. 살아서 함께 건강하게 살 때 잘 해줄 것을. 

  내 어머니가 그랬었다.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고 다른 장기로 급속히 전이되어 수술이고 항암치료고 손쓸 사이도 없이 4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림프종 암으로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나 또한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랴. 그리고, 이 이승에서의 삶 자체가 잠깐 갔다 오는 것이 아니랴.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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