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6) / 정치 좀 잘해라 - 유준화의 ‘분통’
분통
유준화
내가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투표를 안 해요
내 나이 구십인데
나는 육이오 난리 터지고 일주일 만에 군대에 끌려가
휴전할 때까지 죽다가 살아온 첨전 용사요
빽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놈 자식들은
요리 빼고 저리 빼서 군대를 안 갔어요
몸 아파서 돈도 못 벌어놔
보훈처에서 한 달에 오십만 원 주는데 그거하고
나라에서 못사는 사람 주는 돈 그거 가지고 살아요
투표해서 뽑아준 놈들치고 높은 자리 가면 못된 짓 해서
감옥 가는 것들이 한둘이 아녀요
이놈들이나 저놈들이나 똑같아요
내 손으로 도둑놈 만드는 일 절대 안 해요
내가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투표를 안 해요
TV를 보고 있던 노인 한 분이
자장면 그릇에 시커멓게 토해내고 있었다
―『어린 왕자가 준 초록색 공』(천년의시작, 2019)

<해설>
이 시를 읽고 공감할 분들이 꽤 될 것이다. 국회의원을 뜻하는 한자어 選良(선량)은 아주 뛰어난 인재를 뜻하는데 실제로도 뛰어난 인물인가? 물론 어느 분야의 전문가도 있고 지역주민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도 있다. 하지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덕분에 안 잡혀갈 뿐 불법을 저지르는 범법자들이 적지 않았다. 선거사범만 해도 얼마나 많았으며, 뇌물을 받아먹은 이는 또 얼마나 많았는가.
유준화 시인의 시에 아흔 살 노인이 한 분 등장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입대하여 3년을 꼬박 전장에서 살았던 노인은 ‘분해서’ 투표장에 안 간다고 한다. ‘감옥 가는 것들’ 중에는 전두환ㆍ노태우 대통령이 있었다. 이명박ㆍ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서 형을 살고 있는 중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에게 저격당해 죽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했다. 국권을 수호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맹세한 그들의 인생 말로가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노인의 악에 받친 목소리에 공감이 간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전쟁 때 “빽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놈 자식들은/ 요리 빼고 저리 빼서 군대를 안 갔”다는 노인의 말씀은,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종종 해주셨다. 훈련소 교관이었던 아버지는 사격술 정도만 가르쳐서 병사들을 계속 전선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들이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고 했다.
노인은 대놓고 정치가들을 ‘도둑놈’이라고 말한다. 이번에 뽑힌 선량들은 제발 자식을 불법취직 좀 안 시켰으면 좋겠다. 부정청탁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