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0) / 재미있는 알파벳 공부 - 문봄의 ‘와글와글 알파벳’
와글와글 알파벳
문봄
I
- 내가 파르테논 신전 기둥이었잖아.
A
- 아이, 너 지금 에펠탑 앞에서 뭔 소리야?
C
- 에이, 가장 높은 데서 빛나는 조각달 안 보여?
O
- 씨이, 아까까지 떠 있던 태양이 바로 난데……
Q
- 오우, 달걀 노른자 터지는 소리 좀 그만해.
―『어린이와 문학』(2020년 봄호)

<해설>
영어 알파벳 모양을 갖고 쓴 재미있는 동시다. 알파벳을 의인화할 생각을 한 것도 good idea였지만 알파벳 모양의 특징을 잘 짚어냈다. I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A는 에펠탑, C는 조각달, O는 태양, 하하, 그리고 Q는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가 터져버린 모양이다. 알파벳의 수가 좀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른 알파벳 모양을 떠올려본다. H, T, M, U, V, Y, Z 등도 재미있는 모양인데 문봄 시인이라면 무슨 모양이 연상될까? 우리가 하는 감탄사 중 아이, 에이, 씨이, 오우는 가능하지만 나머지는 안 되려나? 에이취는 기침 소리, 피는 비웃는 소리, 유는 너를 부르는 소리 you, 와이는 되묻는 소리 why로 한다면? (아아, 엉뚱한 주문을 하고 있다.)
랭보의 시 중에 「모음들」이란 게 있다. 알파벳 모음들을 색채이미지로 풀어낸 세계 문학사의 명작을 썼을 때 그의 나이 18세였다. 19세 때까지만 시를 쓰고 절필했지만 우리는 천재가 아니므로 장거리경주자의 고독을 만끽해야 한다. 이제 막 등단했으니 반짝 쓰고 사라지는 시인이 아니라 꾸준히 쓰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또 다른 게재 작품 「검은 비닐봉지」도 재기발랄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므로 동시 시단에서 큰 활약을 하리라 기대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