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0) / 노시인의 동주 생각 - 김남조의 ‘윤동주’
윤동주
김남조
새벽의 시인 윤동주는
한국 현대사의 으스름 첫새벽에
28년 생애를 살고 갔다
하늘과 땅 사이
샘물과 푸성귀와 종소리까지도
그 이름 ‘식민지’이던 때
죄 없는 죄수복을 입고도
그는 풍요로웠다
차갑고 습한 시멘트 바닥에서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한
감성의 제왕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나에게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다던
그의 시 「십자가」는
시인의 영혼을 관통한
진실이었다
그의 탄신 100주년에
꽃과 가시로 엮은 시의 면류관에
뼈와 손톱으로 비문(碑文)을 새기노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윤동주’
이 한 구절이다
―『사람아, 사람아』(문학수첩, 2020)

<해설>
대한민국 사람치고 누가 윤동주를 모르랴.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오면 윤동주의 시를 10편 정도는 공부하게 되고, 선생님은 그때마다 시인의 생애를 말씀해주셨을 것이다. 1917년 12월 30일에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코오카 형무소에서 숨졌으니 지상에 머문 기간이 27년 1개월 16일 동안이었다. 이 짧은 기간에 쓴 시의 편수가 70편이 넘는데 이 가운데 주옥같은 명작이 얼마나 많은가.
김남조 시인은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살짝 바꿔 마음속으로 비문을 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윤동주’라고. 우리 현대시 110년 역사 전개 과정에서 수많은 시인이 있었지만 불멸의 별이 된 시인은 많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윤동주가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라고 한다면 반론을 펼 사람이 있을까. 생애가 짧았다, 불행하게 생을 마쳤다는 이유로 별이 된 것이 아니다. 명작이 즐비한데 천주교인인 김남조 시인은 그중에서도 「십자가」를 꼽았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로 끝나는 이 시야말로 “시인의 영혼을 관통한 진실”이라고 했다. 윤동주는 타인을 위한 희생양의 길을 간 예수를 생각했고 김남조는 예수와 윤동주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했다.
요즈음처럼 방에서 지내야 하는 날에는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는 것도 좋겠다. 일본 사법성 형사국 발행 『사상월보』제109호(1944년 4~6월분)와 교토 지방재판소의 판결문을 보면 동주가 4촌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분명히 나와 있다. 예수도 윤동주도 절대적인 권력에 저항했던 인물이었다. 33세, 28세, 다 얼마나 꽃다운 나이였던가. 그 나이에 한 사람을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한 사람은 외마디 비명을 토하고 죽었다. 그럼으로써 인간세상의 밤하늘을 빛내는 불멸의 별이 되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