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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와 로마제국의 멸망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비바람과 함께 천둥번개가 내려치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런 사고도 되지 않은 채 공포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천둥번개가 그치고 비바람이 지나간 후에는 구름 사이로 밝게 빛나는 별들이 나타난다. 게르만족이 로마제국으로 이동하던 과정에 대해 많은 기록과 전설들은 어두운 밤의 천둥번개로 비유했다. 이제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천둥번개와 그 밝게 빛나는 별들에 대한 내용이다.
로마군들이 지키는 울타리 밖에는 사방에 흩어져 떠도는 종족들이 있었다. 훈족(Huns), 반달족(Vandals), 서고트족(Visigoths), 동고트족(Ostrogoths)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집을 짓고 살지도, 목욕을 하지도, 음식을 익혀 먹지도 않았다. 그들은 천막을 짓고 살았고, 말을 타고 다니며 싸웠고 음식은 날것으로 먹었다. 이들은 수천 수만명씩 떼를 지어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 쳐들어와 마을 정복하고 농작물을 약탈하곤 해서 로마인들은 이들을 바바리언(barbarian)이라고 불렀다.
훈족은 만리장성 밖의 서아시아 지역에 살던 민족이다. 말에 탄 채 잠자고 식사하고 회의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작은 키, 작은 눈의 훈족은 만리장성 안쪽 중국에 대한 공격이 불가능해지자 서쪽으로 공격의 방향을 바꾸었다. 용맹스럽기로 유명하던 게르만족조차도 서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을 붕괴시킨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유럽의 중세가 시작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4세기에서부터 6세기에 걸쳐 게르만족을 비롯하여 여러 민족이 서부 유럽과 남부 유럽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한다. 게르만족을 막기 위한 로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476년에 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 동게르만의 여러 부족을 아우르는 반달족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건너간다. 반달족은 로마를 약탈하고 해안 도싣들을 정복하고 약탈했다. 지금까지 문화적 파괴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부르는 것이 로마를 약탈하던 반달족에서 유래했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전쟁이 거듭되면서 집들은 초라하고 옹색해졌으며 로마인들이 건설해놓은 길과 다리들은 붕괴되고 많은 과거의 로마 도시와 로마군 주둔지도 폐허가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들은 이때를 중세의 암흑시대로도 불렀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 글을 읽을 줄 하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원거래 무역과 상업이 위축되면서 세상에 대한 정보의 유통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마법사, 마녀, 악마와 같은 중세 유럽의 환상적이고 황당한 이야기와 신화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생겨났다. 로마 말기부터 서유럽에서 중부유럽, 동부유럽으로 확산된 그리스도교의 영향은 매우 컸다. 인간에게는 신이 주신 영혼이 있으며 왕이나 영주, 상인이나 거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오로지 신의 뜻에 따르려는 사람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나쁜 것에 관해 신에게 벌 받을 것을 두려워 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에서는 나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운둔자처럼 사막으로 가서 기도하고 참회하는 생활을 했는데 수도사들이라고 불렀다. 수도자란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하며, 남자 수도자는 수사(修士), 여자 수도자는 수녀(修女)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참회만이 예수 가르침의 전부는 아니며 선한 일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도사가 나타났다. 그는 베네딕트(St. Benedict of Nursia, 480~547)였는데 기도와 참회만이 예수가 가르치던 전부가 아니며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뜻을 함께하는 수도사들과 협회를 만드는데 베네딕트수도회는 이렇게 시작된다. 480년 이태리 중부 누르시아에서 출생한 베네딕트는 로마의 부패상을 보고 실망하여 수도사가 되었다. 베네딕트는 처음 3년 동안 동굴에서 수도를 하다 인근 수비아코(Subiaco)에 작은 수도원을 세워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베네딕트 수도회(Ordo Sancti Benedicti)는 수도원에 들어오려는 이들에게 세 가지를 서약시켰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결혼하지 말며, 수도원장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었다. 이제 수도사들은 선한 일을 하기 의해 능력과 지식을 갖춰야 했다. 베네딕트 수도사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을 수집하여 연구하고 보급을 위해 몇년씩 걸리면서 필사본을 만들었다.
중세 유럽 수도사들의 지식 활동
수도사들은 성서와 성인에 대한 내용뿐만아니라 고대 그리스 시대에 씌어진 시나 자연과학, 농업, 기술에 대한 문서들도 필사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와의 로마의 철학과 문학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건 수도사들의 고된 작업 덕분이다.
수도사들이 성서만큼이나 중요하게 필사된 내용이 농업 문헌들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수도사들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나 수도원 주변에 사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읽고 쓰기를 가르치고 라틴어와 성서를 공부했다. 수도사들은 많은 시간을 성경이나 종교인들이 쓴 책을 읽는 데 보내는데 그 시대는 책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羊皮紙)에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
전해지는 문헌들에서 전해지는 양피지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양이나 염소, 암소의 가죽을 흐르는 물에 여러날 담가 두었다가 석회를 푼 물에 또 며칠 담가, 석회는 가죽에 돋은 털을 물크러지게 하는 화학 성분을 가지고 있었다.
수도사들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니고 게르만족이 살고 있는 지역도 서슴없이 들어갔다. 수도원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을 정리하고 발달시키며 교육시키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 북유럽과 중앙유럽까지 항해하며 교역하거나 약탈을 하던 바닷사람을 바이킹이라고 부른다.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바이킹의 활동이 미친 적도 있었다. 바다와 강을 통한 탐험과 식민의 시기가 지난 뒤 바이킹들은 북서유럽, 동유럽, 북대서양 도서, 멀리는 북아메리카 북동해안에 이르기까지 각지에 정착했다.
당시로서는 오지였던 아일랜드와 영국에 수도원들이 많이 세워졌다. 이곳에도 게르만족이 정착해 살았는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앵글족과 색슨족이 되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수도사들은 갈리아와 게르만족의 나라나 바이킹들이 있는 지역에도 들어갔다. 처음 브리튼 섬에 들어간 수도사는 베네딕토회의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켄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Canterbury, ?-605년)였다. 그를 영접한 왕이 브리튼 섬의 남부 지역을 다르시던 에셀버트(Ethelbert)왕이었다. 잉글랜드에 건너온 아우구스티누스는 켄터베리에 자리를 잡고 앵글로색슨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이야기하고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수도사와 게르만족의 시대
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서부, 그리고 라인 강 서쪽의 독일을 포함하는 지방을 로마시대 때부터 갈리아(Gallia) 또는 골(Gaul)이라고 불렀다. 5세기 말에 들어 게르만족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르만인들이 로마사람의 관습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말을 타고 다니던 생활을 버릭 로마인들처럼 집을 짓고 살고 수염을 깎고 목욕을 하는 습관도 들이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가르쳤다. 골 지방의 게스만족들은 스스로를 야만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대 그리스 시재의 트로이의 후손이라고 주쟁했다, 이러한 와중에 훈족이 쳐들어오고 게르만족들이 단결하여 맞서싸우는 과정에서 메로비스(Merovis)라는 전사가 나타난다. 브루군트족의 공주 클로틸다(Clotilda)와 결혼한 메로비스의 손자 클로비스(Clovis, 446-511)는 골 지역의 남은 로마군대마저 물리치고 프랑크 왕국을 세우는 데 그 지역을 지금 우리는 프랑스(France)라고 부른다.
용기와 지략으로 유명했으며 프랑크 왕국을 세운 클로비스가 496년에 부족과 함께 세례를 받게 되는 이야기가 중세에 기록된 『성 데니스의 연대기(The Chronicle of St . Denis)』에 전해진다. 글로비스는 알라마니족과의 전투에서 한때 전멸의 위기에 놓인다. 클로비스는 하늘을 보며 외쳤는데 “하느님, 이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게 해주신다면 저는 영원히 당신을 섬기겠습니다”고 한다. 결국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을 아내가 믿는 신의 가호에 의한 것이라고 반성하여 개종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클로비스는 프랑크족, 로마인, 부르군트족, 암라마니족을 결속시키기 위해 세 가지 조치를 취했다. 센(Seine) 강면에 파리지움(Lutetia Parisiorium)이라는 수도를 만드는데 그 도시가 지금의 파리이다. 둘째는 백성들 모두 그리스도교도가 되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셋째는 모두가 따라야 하는 법률을 만들어 널리 알린다. 재미있는 것은 그 법조항중에 다른 사람을 여우나 토끼로 부르면 120디나르를 물어야 한다는 조항이다. 여우가 교활한 사람을 뜻하고 토끼가 겁 많은 사람을 뜻한다고 볼 때 프랑크인들은 여우나 토끼로 지칭하면 큰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용감한 것을 매우 좋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클로비스의 할아버지인 메로비스는 서로마제국의 용병 출신인데 검술이 뛰어나 서로마제국의 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인 메로비스가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혈통이라는 전설이 있다. 진실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메로빙거 왕실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예수의 후손으로 믿어오고 있다. 『다빈치코드』와 『성혈과 성배』는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교를 국교화한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르만족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은 것은 당시에도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과 화제거리였을 것이다. 예수의 후손이라는 전설은 아마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중세의 지식과 선교를 이끈 수도사들의 활동이 게르만족의 왕권과 결합하는 데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글로비스가 자신의 부족들과 함께 세례를 받은 것은 그리스도교의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들의 승리를 도와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최고의 지식을 지니고 있던 수도사들은 프랑크 왕국에서 바이킹 왕국까지 게르만족의 나라에도 꼭 필요한 인재였고 실제로 많은 일들을 하였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 학회장.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앱(App) 가치 네트워크의 지식 생태계 모델 연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 비즈니스, PR, 지식 생태계이며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유튜브 채널 : 공병훈 지식공유지
중세 암흑기 수도사들이 큰 일을 하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