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등호는 점점 작아지고 우리는-류휘석
[특집] 부등호는 점점 작아지고 우리는-류휘석
  • 편집 담당 이민우
  • 승인 2022.02.25 14:57
  • 댓글 0
  • 조회수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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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등호는 점점 작아지고 우리는

-류휘석


회랑 1
이 사람 슬퍼 보여 

검지로 턱을 받친 채
너는 결론짓는다 
표정 없이

우리는 슬퍼 보이는 사람1을 지나친다

이 사람도 슬퍼 보여

회랑을 울리는 구두굽의 파열음 사이로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보다 더

회백색 탁자에 놓인 투명한 유리병
뿌리가 마른 행운목

인간이 만들어낸 슬픔은 고작
턱 두어 번 흔들리고 마는 
검지 하나만큼의 무게인데

요즘은 도슨트가 없어서 좋아 딱 이정도의 슬픔이

너는 누가 민 것처럼 회랑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흐느끼는 소리 점점 커지고

나는 더 슬퍼 보이는 사람1 앞에서 도록을 꺼낸다

회랑 2
너른 창 
산란하는 빛
다각도의 그림자

아까 본 유리병 안에서 두 사람이 걷고 있다 속력 없이 그림자 없이

여긴 햇빛이 너무 밝다 이렇게 밝을 줄 모르고 그렸겠지

네 엉성한 손차양 사이로 여과된 빛이 
유리병에 스며

얼굴 하나 
얼굴 둘

불투명해지고

이 사람은 기뻐 보이네 

얼굴도 없이

출구 1
멀리서 아주 커다란 조명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유리병을 지나 슬퍼 보이는 사람1을 지나

저건 안 보고 가도 되겠지?

흐느끼는 사람1을 본 셈 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똑같은 얼굴들

들고나온 구두굽 소리가 도로에 닿을수록 희미해졌다

 

시작노트

불안을 마주하는 자세는 다양하다. 나는 주로 더 깊게 들어가 두고 온 건 없나, 곧 무너질 것 같은데 따위를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가끔은 거기 안락한 구석자리에 머물다 오기도 한다. 
부등호는 점점 작아지고 우리는 결국 어디론가 밀려날 것이다. 기호에 맞서는 텍스트. 기호와 함께 함몰하는 텍스트. 나는 안쪽의 것을 여러 번 바깥으로 끌고 나와 보았으나, 너무 어둡다는 말은 너무 밝다는 말과 비슷하였다. 슬픔을 껴입고 걸어도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편집 담당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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