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씨앗(Palabras semilla)
말 씨앗(Palabras semilla)
  • 야나 루실라 레마 오타발로
  • 승인 2022.11.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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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의 영상 제작가, 문화 활동가, 언론인, 시인이다. 키츠와어(Kichwa)와 스페인어(Spanish)의 이중언어로 창작을 한다. 안데스의 전통적인 신화적 ‧ 시적 언어와 도시에 거주하는 키츠와인들의 현대적 ‧ 도시적 ‧ 일상적 언어를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시 세계의 주요한 특징이다. 시집 『나는 비와 함께 정중하게 오노니(Tamyawan Shamukupani)』(2019)를 출판하였고, 『그대 입에 굶주리고(Kampa shimita yarkachini』(2021)로 호르헤 카레라 안드라데 문학상(Jorge Carrera Andrade Prize)을 수상했다. 전 대륙적인 선주민 연
대를 위해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키츠와어(kichwa) : 남미에서 가장 많은 선주민이 사용하는 언어인 케추아어(quechua)의 한 갈래로 주로 에콰도르에서 사용된다. 키츠와어 문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스페인어 알파벳을 사용한다. 그래서 시인은 키츠와어를 말할 줄 알았지만 쓰기와 읽기 못했다. 선조들의 구전 기억에 남았고, 귀로 그 언어를 거의 온전히 배웠다. 알파벳 단어, 문어, 책은 지배 언어인 스페인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특권적 영토였다.

로사리오 킨체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번개가 시간을 낮과 밤으로 가르면서 태양과 달이 생겨났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많은 식물로 뒤덮였다. 달이 해를 가린 일식이 일어나 어둠에 온통 잠겼을 때 최초의 부부가 말(palabra), 즉 키츠와어(kichwa)1)라고도 부르는 루나 쉬미(runa shimi, 인간의 언어)를 보듬었다.

[...] 해가 질 무렵, 부부는 폭포 물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었다. 수천 가지 색이 펼쳐지는 꿈이었다. 폭포와 새들의 노래, 동물과 곤충과 바람의 소리 등이 미끄러지더니 부부의 핏줄에, 또 뱃속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은 그 노래 및 소리들과 함께 노래했고, 환희와 즐거움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노래는 만물의 이름, 대지의 모든 요소의 이름을 지었다. 그들의 말, 해와 달의 생명력을 쐰 그들의 말이 우당탕탕 강물에 합류했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말이 해, 달, 물, 흙이 살아갈 세월을 함께 하리라는 표식이었다. 불현듯 잠에서 깨어난 부부는 꿈속에서 한 말들을 되풀이 말했다. 로사리오 킨체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였다. 인간의 언어인 루나 쉬미는 자연의 노래에서 탄생했고, 그래서 모든 말이 타키(taki), 즉 노래라고 [...] 

로사리오 어르신이 태고의 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듯이, 우리 부모님도 산에 사는 아푸(Apu, 일종의 산신령)들에 대해서, 강물과 바닷물과 호수 물의 주인 정령들에 대해서 많은 신화, 전설, 꿈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다만 시를 통해 그 이야기를 할 뿐. 그것이 내 즐거움이요 내 언어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 나는 스페인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키츠와어는 말만 할 줄 알았지 쓰기와 읽기는 못했기 때문이다.2) 역사적으로, 우리의 언어들을 숨기고 소멸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구전 기억에 남았고, 우리는 귀로 그 언어를 거의 온전히 배웠다. 그 무렵에는 알파벳 단어, 문어, 책은 지배 언어인 스페인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특권적 영토였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쓰기를 통해 자유롭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말로 대놓고 하지 못하는 말을 시를 통해 할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학교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사와 지리 과목에서 선생님들이 인디오(인디언)라는 존재와 다소나마 조우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내가 누구인지 발견해 갔다. 그 후 대학에서 키츠와어를 공부했고, 내 모태어로 쓰고 읽는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선주민운동 단체들이 발행하는 잡지와 신문에 초기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미 내게 연락해 작품이나 번역을 요청했던 것이다.

센트랄대학에서 TV 방송에 대해 공부하고 있을 때, 이미 에콰도르 선주민 제(諸)국민 연맹3)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연맹은 내게 완벽한 공간이었다. 선주민들의 민족적 지위와 권리를 위한 투쟁에 기여할 수 있었고, 글쓰기와 영상물 제작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사회적 투쟁을 문학에 접목시켰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사진에 종사했고, 글쓰기를 하고 번역을 했으며, 리포터와 행사 사회자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오직 글쓰기, 오직 시만이 중단 없이 해온 일이었다. 자유로운 시간이면 단편과 시를 쓰곤 했다. 어떤 작품들은 망실되고, 어떤 작품들은 스스로 폐기하고, 어떤 작품들은 선집들에 수록되어 남았다.

나는 출판 영역에서 선주민어로 된 공동 시집 편찬을 시작했다. 제 선주민 민족과 부족들을 모아 우리의 시와 언어들을 공유하고 가시화시키는 일을 했다. 그 길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모여 ‘옥수수 축제’(La fiesta del maíz)라는 시 페스티벌을 4회 개최했고, 이를 통해 이중 언어(선주민어와 스페인어) 시 선집 3권이 탄생했다. 우리 시를 좀 더 전파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몇몇 시인들이 이목을 끌었다.

나는 선주민 민족과 부족들의 현대 문학 진전을 위한 밀알이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후 내 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동문학 단편집 『별 Chaska』(2016)과 두 권의 시집 『나는 비와 함께 정중하게 오노니 Tamyawan shamukupani』(2019)와 『그대 입에 굶주리고 Kampa shimita yarkachini』(2021)를 출간했다. 기쁘게도 『별』과 『그대 입에 굶주리고』는 각각 2016년과 2021년에 국내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직 우리는 여기에 Kanchikra」, 「나의 길 Ñuka puri」, 「구름 속의 옥수수 꽃 Hawa phuyupi sara sisa」은 이 길을 가던 중 탄생했다.

「아직 우리는 여기에」는 우리의 말, 우리의 선조들이 한 말, 식민지 시대와 공화국 시대 때 기독교식 이름을 사용하라고 강요하면서 우리에게 앗아간 이름들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의식(儀式)에 대해 노래하는데, 들판에 꽃이 만발하는 시기의 투마리나(tumarina, 물과 꽃을 예찬하는 놀이 의례) 의식이다. 2월에서 3월 사이의 어느 새벽에 꽃잎들을 따고, 비탈을 흐르는 물을 길어 거기에 띄운다. 어른들은 가족 내 젊은이들이 쓴 관에 꽃물을 뿌리면서 “씨앗이 싹 트고 꽃이 피듯이, 너의 삶도 활짝 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의 길」은 이주에 대해서, 즉 공동체를 떠나 도시에서 성장한 뒤에 귀환하는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공동체에 돌아와도 사람들은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두 개의 길을 다룬 시이다. 자신의 마을에서도 다른 부류 사람으로 보이고, 공동체 외부로 가도 그렇게 보인다. 그는 두 세계에 모두 속하는 셈이지만, 이 두 세계는 그를 불신하는 일이 잦다. 그 사람이 여성이면, 더 어려움을 겪는다.

「구름 속의 옥수수 꽃」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이다. 에콰도르 선주민 운동에 10년 이상 몸을 담으면서, 나는 많은 행진, 봉기, 저항의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토지와 문화를 위해 투쟁했고, 대부분의 경우 각종 요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 저항적 행위들이 필요했다. 그 필요성과 외침들 속에서 이 시가 태어났다. 물, 토지, 옥수수가 모든 이의 것이 되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에콰도르에는 14개 민족과 전통 부족들이 존재하고, 저마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가 있다. 일부 언어들은 사파라(Sapara)어처럼 소멸 직전의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그래서 각 민족의 신화적·시적 말들을 채집하고 사회적으로 통용시키는 일이 다급하다. 이 말들이 소멸되지 않도록 언어를 강화하는 일 역시 절박하다. 말과 꿈을 공유하는 회합인 무유이(muyuy)를 다시 열 필요가 있다. 그 언어들의 사용자인 우리에게 언어 수호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책임은 오늘날까지도 결여되어 있는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 행사를 통해 우리의 언어, 할머니들의 구전 이야기에 뿌리를 둔 우리의 문학과 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술은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의 주인이 되기 위한 길을 열어 준다. 예술은 아직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세상에 알리기 위한 우리의 언어이다. 

‘무유 문화·문학 서고 기획’을 통해 시작한 창작 교실, 도서 교환, 대화 교실, 낭송회 등은 그 꿈의 일환이고, 언어, 목소리, 글, 책 등은 지금 우리 시대에는 생존과 저항의 메커니즘이다.

내 경우, 개인적인 꿈이 항상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열망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요즘 나는『풀려난 목소리들』(Shimi kacharishka)이라는 책을 집필하는 한편, ‘우주적 직물’(Away pacha)이라는 첫 개인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금년 11월경에 열릴 예정인데, 이를 통해 직조 예술이 또 다른 형식의 텍스트이자 글쓰기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오늘날에는 직물 문양을 해독할 줄 아는 사람은 소수이다. 하지만 이들은 시집 읽듯이 직물을 읽어 낸다. 폄훼되고 망각된 그 또 다른 텍스트성에 대해 우리가 문맹처럼 느끼는 오늘날 그런 전시회는 더욱 가치 있을 것이다.

전시회의 목적은 선조 대대로 이어진 그 시각성에 접근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 역사와 사유의 일부를 아는 일이다. 전시 직물들에는 키츠와어 시가 수반될 것이다. 관객이 직물에 담긴 다양한 서사적 담론을 발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 민족은 직물의 민족이어서 성인들은 실, 부들, 용설란 섬유질 등으로 
길쌈을 한다. 그리고 오늘날 나는 말로 길쌈을 한다.

어머니 대지에 바치는
달콤한 메아리,
할머니들에게 바치는
즐거운 메아리,
아이들의 목젖에서
풍요로운 언어가 되소서.
나와 당신들 내부에서
비옥한 대지가 되소서.
우리 그대 메아리와 함께 유희를 벌이고,
그대와 함께 우리의 신들을 명명할지니.
우리 소리 높여 세상을 읽을 것이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 사랑할지니.
우리 내부에 
뿌리를 둔 언어,
그대 결코 소멸하지 않으리.
- 2022년 9월 30일 오타발로에서

1) 남미에서 가장 많은 선주민이 사용하는 언어인 케추아어(quechua)의 한 갈래로 주로 에콰도르에서 사용된다.
2) 키츠와어 문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스페인어 알파벳을 사용한다.
3) CONAIE(Confederación de Nacionalidades Indígenas del Ecuador): 1986년 11월 16일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여러 선주민 민족(nacionalidad)과 부족(pueblo)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전국 조직을 갖춘 에콰도르에서 가장 강력한 선주민 단체로 1990년대에 눈에 띄게 활성화된 선주민운동을 주도하면서 때로는 정권 교체 혹은 대선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민족’이라는 표현은 선주민 종족 하나하나가 별도의 민족으로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사용했다. 즉 선주민들은 에콰도르가 다민족 국가임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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