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링하면 어떤 게 떠오르는가? 구체적인 장면들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공유하는 감성은 비슷할 거라고 예상된다. 주말 오후 책을 곁들인 티타임, 친구들과의 수다, 전시회에서의 그림 감상, 맛있는 술과 음식, 향긋한 향이 가득한 동네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그렇다면, 퀴어하면 떠오르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투쟁, 연대와 같이 권리를 위한 행동이나 다양한 운동들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고통, 트라우마와 같은 키워드가 건드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단어만 똑 떼어놓고 보면 ‘퀴어’와 ‘힐링’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일뿐더러, 심지어는 거리가 굉장히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퀴어에게 힐링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출판사 18도의 얼그레이의 퀴어문예지 일곱 개의 원호 3호 : 힐링(이하 「일원호」 3호) 6인의 작가(박인하, 지화용, 박서련, 이하랑, 김선오, 이제재, 비이)가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동화, 소설, 시의 형태로 퀴어의 힐링을 이야기한다. 다만, 각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상처를 치유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인물 혹은 화자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일상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인다.
즉 「일원호」 3호는 힐링이나 휴식을 취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힐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마냥 행복하고 편안한 서사를 기대하고 책을 펼친 독자라면 다소 당황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본 문예지에 등장하는 사람들(필진, 편집자, 인물과 화자들)은 따지자면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 가깝다.
책 바깥에 있는 퀴어들도 마찬가지다. 규칙적으로 치유(외적인 치료든 심적인 안정이든)를 받을 수 있는 사람보다, 당장 치유가 필요함에도 눈앞의 투쟁을 위해 휴식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이에 「일원호」 3호는 그러한 사람들이 독자로서 이 이야기들을 만나,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스스로의 안정을 위한 시간을 가지길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편집자와 필진 간의 인터뷰도 「일원호」 3호가 주는 힐링 중 하나다. 작가가 어떤 사유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고 또 작품 밖에서는 어떻게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지 인터뷰의 형식으로 읽어나가다 보면 기성 출판물의 ‘작가의 말’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