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0) / 돌아서면 배가 고픈 우리 인간 – 서희의 ‘아귀도 연대기’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70) / 돌아서면 배가 고픈 우리 인간 – 서희의 ‘아귀도 연대기’
  • 이승하
  • 승인 2023.03.1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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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아귀도 연대기

서희

탐욕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이는 곳

먹어도 또 먹어도 배가 늘 고파오는

뱃속에 들어가서는 불이 되는 형벌이다

우리는 아귀 입의
가련한 껍데기니

먹을수록 허전해도 볼록 나온 저 배를 봐

목마른 허영의 숟갈 베어 물고 사는 우리

무겁도록 가늘어진
목구멍에 넘어가는

밤새워 긁어모은 욕심이 회귀한다

아귀야, 헛배로 텅 빈 네 모습을 닮는 우리

ㅡ『무슨 말을 덧붙일까요』(시인동네, 2023)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위키백과에서 아귀(餓鬼)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았다. 아귀는 불교에서 늘 굶주리는 귀신으로, 몸은 태산만 하고 입(또는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다. 불교의 육도(六道) 중 아귀도(餓鬼道)에 해당하는 존재로, 생전 식탐을 쌓아온 사람은 죽어서 아귀도로 윤회 전생하게 된다나. 겉으로 보기에 복부가 심하게 나와 있는 반면,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 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항상 극심한 갈증을 느낀다고 한다. 아귀가 되는 대상자는 살아생전 식탐이 지나치거나 돈을 광적으로 밝혀 사람의 목숨보다 돈을 더 소중히 했던 자들이 해당된다나. 다른 이론에 의하면 아귀 앞에 나타나는 음식은 아귀가 받은 저주 탓에 모두 불로 변해 먹지도 못한다고 한다. 

 시인은 어떤 특정 대상을 아귀로 지칭한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 모두를 아귀로 보았다. 하루만 굶어도 머릿속이 온통 음식으로 가득 차는 것이 인간이다. 한창때는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물론 과장법이지만. 텔레비전에 ‘먹방’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우리네 삶이 먹는 것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중에 혼자 사는 사람을 탐방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지난 3월 1일에 543회를 방영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연에 난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장면이다. 

 서희 시인은 우리 모두가 아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냐고 얘기한다. 우리는 “먹어도 또 먹어도 배가 늘 고파오는//뱃속에 들어가서는 불이 되는 형벌”을 받고 있다. “먹을수록 허전해도 볼록 나온 저 배를” 갖고 있고, “목마른 허영의 숟갈 베어 물고” 있다. “헛배로 텅 빈 네 모습을 닮는 우리”이니, 그저 눈만 뜨면 먹을 것을 찾는다. 이러니 우리는 아귀를 닮은 중생이다. 아, 벌써 점심시간이네. 뭐 좀 맛있는 거 없나? <고독한 미식가>의 저 아저씨는 저렇게 먹고도 살이 안 찌네. 도대체 비결이 뭘까?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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