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끝
정병근
당신은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아는 사람
내가 꿈에서처럼
걱정 없이 행복할 때
당신은 잠시 소꿉을 접고
안 보이는 곳에 가서
홀로 울고 돌아오네
ㅡ『중얼거리는 사람』(여우난골, 2023)에서

<해설>
대한민국에서 정병근의 술주정을 모르는 사람은 김정은이 보낸 간첩이다. 아아, 정말 끔찍했다. 정병근 시인의 주사 때문에 여행지에서 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윤후명 작가와 김영승 시인의 술주정도 대단했었는데 이 두 분은 완전히 끊었다. 다 아내 덕분일 것이다. 소문이 들려왔다. 정병근이가 술을 끊었대. 설마?
이 시를 보니 끊은 것을 알겠다. 그도 아내 덕분이다. 화자가 꿈에서처럼 행복했을 때는 명정(酩酊)의 상태에 들어갔을 때였을 것이다. 술에 취하면 조용해지는 사람이 있고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 정병근은 두 번째 타입이었다. 아내는 집안일을 다 그만두고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울고 오곤 하였다.
제목을 ‘비 끝’이라고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비가 그치면 날씨가 화창해진다. 아내가 다 울고 나면 시인도 술에서 깨어난다. 술로 채워진 수렁에서 빠져나온 시인은 아내를 매일 업어주어야 한다. 더 이상 울게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