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꽃
이태규
절간 주차장 입구에
‘만차’라고 써 있기에
차를 밖에 대고 들어갔다
주차장에 들어가 보니
텅텅 비어 있다
“절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법당에 들어가 큰절을 하고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
돌아서 나오려는데
부처님이 뒤에서 한 말씀 하신다
“이 사람아, 시주는 하고 가야지”
나도 돌아서서 대답한다
“소원성취하면요”
불이문을 나오려는데
누가 뒤에서 휙 하고
모자를 낚아챈다
모자가 날아가서
연못 한복판에 떨어진다
연꽃이 받아쓰고 빙그레 웃는다
부처님은 연못에서 만발하고 계시다
ㅡ『그리움으로 가는 파도』(명성서림, 2023)에서

<해설>
시가 시종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법당에 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부처상을 의인화하여 시적 화자와 대화를 나누게 한다. 아마도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인가 보다. 절 주차장 입구에 ‘만차’라고 써 있기에 밖에 대놓고 걸어 들어갔더니 텅텅 비어 있다. 절이 내게 거짓말을 하다니. 실망한 것이다. 그래도 법당에 들어가 큰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 나오려고 하는데 부처님이 한 말씀 하신다. “이 사람아, 시주는 하고 가야지” 물론 허구다. 시인의 스토리텔링은 계속 이어진다. “소원성취하면요”라는 대답이 그 하나요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 연못 한복판에 떨어지는 게 그 둘이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이 노리는 것은 오늘날 종교가 지나친 자본추구, 불량공세를 해 종교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데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려는 데 있다. 종교가 영혼의 구원을 등한시하거나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지 않으면 저잣거리의 호객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 나라의 종교들이 물질의 힘에 너무 의존하고 있지 않은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반성해야 한다. 이태규 시인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