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63) 우리가 가야 할 곳은?―안혜경의 「한식」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63) 우리가 가야 할 곳은?―안혜경의 「한식」 
  • 이승하
  • 승인 2023.09.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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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한송희 에디터

한식 

안혜경


유리 벽장 속의 엄마를 꽉 끌어안았어
손가락 사이로 미소가 흘러내리고
마른 뼈 삭정이도 삐져나왔어
엄마는 벽장 속에 닻을 내리고
모든 게 다 빠져나갔다고 말했어

세상에 없는 얼굴로
벚꽃이 창을 두들기는데

어두운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은
다만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네
엄마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나는 어디로 가는 줄 모르는 얼굴로
다만 하늘을 바라보네

ㅡ『왼편에 대한 탐구』(시인동네,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납골당이란 곳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화장하고 난 이후의 잔존물인 뼛가루를 담은 유골함을 집어넣은 둔 공간임을. 그 안에 사진을 두기도 한다. 그런데 국립묘지에 묻히지 않는 한 보통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안장된다. 봉분을 만드는 것은 온 국토를 묘지로 만드는 일이기에 이제는 해서 안 되고, 수목장도 나무에 실례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의 화자는 한식날 유리 벽장 안에 안치되어 있는 어머니를 찾아간다. 온갖 추억이 다 떠오르고 회한에 사로잡혀 말문을 잃는다. 어머니를 여의는 일은 아버지의 사망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 “세상에 없는 얼굴”이기에 세상이 없다, 하늘이 없다. 그래서 화자는 “어디로 가는 줄 모르는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다.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밥도 같이 먹을 수 있었는데, 볼과 손을 만질 수 있었는데…….

 아마도 각자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에 이 세상의 모든 예술 창작 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 아닐까. 어차피 죽을 테니까 그림을 그리고, 곡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글을 쓰고……. 죽을 운명인 것을 알았기에 고흐도 이중섭도 베토벤도 영혼을 불태웠으리라. 각자 유리 벽장 속으로 갈 운명임을 안다면 조금 더 겸손해질 텐데, 우리는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안혜경 시인은 그것을 얘기하고 싶었으리라.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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