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얘야, 양을 세야지
이정은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내기할래
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거니까
왜 피 맛을 자꾸 보는 거야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동화책 속에 양은 보이지 않고
헉헉거리는
방울 소리 다 지나가면 잔혹동화는 끝이 날까
양을 죽였어요, 아버지를 위해서
감탄사는 하나예요
죽어가는 양을 세야지
아버지 한 마리
ㅡ『평범한 세계』(시인동네, 2023)

<해설>
이 시의 해석은 독자에 따라 많이 다를 것이다. 해설자는 아버지의, 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시로 이해한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 범죄만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 미성년자인 친딸을 7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강제추행한 40대 남성이 9년의 형기를 마친 후 9월 5일에 출소했다고 한다. 딸은 공포에 떨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잔혹동화’를 얘기하고 있다. 왜 딸과 아버지가 나오는데 잔혹동화인가? 딸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아무리 세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딸이 공포에 질려 헉헉거리는가? 악마로 변한 아버지가 욕정에 사로잡혀 헉헉거리는가?
우리나라에서 전국적으로 달래고개, 달래강 전설은 30여 개가 발견된다. 남동생(혹은 오라버니)이 누이와 함께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물에 옷이 젖어 누이의 몸매를 보게 된다. 먼저 가라고 하기에 똥을 누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하도 동생이 안 오기에 강가로 갔더니 돌을 들어 성기를 찍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것이었다. 사정을 알아차린 누나가 동생을 끌어안고 울면서 “차라리 달래나 보지, 말이나 해보지.” 하였다고 하여 그곳을 달래고개라 불렀다 한다. 우리 조상은 근친상간을 이렇게 터부시했다. 그런데 하늘 아래 어찌 이런 일이……. “아버지 한 마리”라는 마지막 행이 가슴을 찢어 놓는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