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67) 바다가 죽으면 사람도 죽는데―이형기의 「바다」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267) 바다가 죽으면 사람도 죽는데―이형기의 「바다」 
  • 이승하
  • 승인 2023.09.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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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한송희 에디터

바다

이형기  


어젯밤 나는 바다를 죽였다.

작살의 섬광 아래
바다는 온몸을 뒤틀면서
단말마의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바다는
거대한 어둠의 흡반이었다
나를 덮쳤다
모든 길은 차단되고
동시에 모든 길은 개방되었다
작살은 불꽃처럼 춤을 추었다
죽이는 자와 죽음을 당하는 자의
그 살기(殺氣)한 오르가슴!

어젯밤 나는 바다를 죽였다.
교미를 끝낸 혹종의 곤충처럼
나도 함께 죽었다.

ㅡ『꿈꾸는 한발』(창원사, 1975)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70년대 전반기면 우리나라가 산업화 세상으로 막 접어들었을 때이다. 그런데 이형기(1933~2005) 시인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예감했는지, 예언자적인 시각으로 이 시를 썼다. 그 당시엔 바다가 오염될 줄 상상도 못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시를 썼을까 신기하기도 하다. 

 바다를 의인화한 시인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바다의 원래 주인은 고래와 상어 같은 어종이 아닐까. 그런데 인간은 포경선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 일대가 온통 붉은색으로 바뀔 정도로 고래를 마구마구 죽였다. 고래를 죽인 게 아니라 바다를 죽인 것이다. 지금은 핵물질이 잔류해 있는 오염수를 바다로 콸콸 방류하고 있다. 

 일본은 2019년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면서 상업적 포경을 재개했다. 너희들은 고래 잡는 수를 규제하겠다고 협정을 맺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무한정 잡을 거라고 온 세상에 선포한 것이다. 바다를 죽이면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남극과 북극이 지금 속도로 녹으면 바닷물의 양은 늘어나겠지만 그 바다가 우리를 덮칠 것이다. 인간이 교미 후에 죽는 사마귀의 운명이 될 것임을 이형기 시인은 이미 50년 전에 경고하였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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